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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식

아파트값 5차 파동 - 4차 파동 정리

by 잘봄 202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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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10월, 부동산 시장은 잠잠하고, 시중 뭉칫돈은 금리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은행에서 빈둥거렸다.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미관 정비하기 위해 달동네 등에서 재개발사업을 추진하였다.

 

7당(當) 6낙(落)

84년 4월, 기존 아파트값 약세, 분양시장도 잠잠.

인기지역 개포동 우성 3차 분양에서 채권매입액이 처음으로 분양가격을 뛰어 넘었다.

84년 8월, 목동아파트가 처음 분양하였는데, 경쟁률은 3.8대1로 낮았다. 채권매입액을 많이 적은 사람은 계약을 포기하기도 했다.

84년 12월, 주택시장과 달리 토지시장은 쌩쌩 잘 나가고 있었다. 중부고속도로 건설계획 주변 땅 투기조짐이 보이자 토지거래 신고제를 실시하였다.

잠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분양, 채권입찰제 아니고 기부금입찰제. 모처럼 주택시장이 활기를 띠는가 했지만... 별 것 없었다.

85년 4월, 목동 아파트 2차 분양, 수요를 무시하고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지었더니 미분양...

* 열병합 발전소를 세워 지역냉난방 시설을 갖춘 목동아파트가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는 학군이 좋지 않았고 전년도 홍수로 물난리를 겪었던 곳이라는 인식때문이었다...

85년10월, 목동 아파트 3차 분양, 분양 주체인 서울시가 여러 방면으로 신경썼으나 모든 평형 미달 발생.

실수요자가 주로 찾는 목동아파트는 미분양되었지만, 같은 시기 가락지구에서 분양된 우성아파트는 경쟁이 치열했다.

돈 되는 아파트에만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 발생.

 

집 없이 폼 나게 살자

86년 4월, 유가 하락, 금리 인하, 엔화 강세 등 3저(低) 호황 시대. 수출이 늘어나 국제수지 개선.

목동에 이어 서울 동북부 외곽지역인 상계동의 광활한 마들평야일대 1백45만 평을 신시가지로 개발.

전용면적이 넓고 관리비가 적게 드는 저층 아파트를 선호하였고 그 중 27평형이 가장 인기있었다. 중·대형아파트를 많이 짓는 목동지구와는 대조를 이뤘는데 분양은 비교적 잘됐다.

86년 9월, 한강개발사업이 추진되어 한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강조망권프리미엄이 생기기 시작함.

2차파동의 진원지였던 여의도 아파트 가격은 내림세.

 

아! 옛날이여

87년 1월, 주택보급률은 낮았지만, 미분양도 많이 쌓여있었다. 투자가치가 낮아 보이는 주택시장은 여전히 침체.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아파트 품질을 높히려고 애썼고, 이 때 지하주차장이 처음 생기고, 30평대 아파트에 욕실을 2개 배치, 서비스 면적 증대하였다.

87년 3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분양, 올림픽 패밀리아파트 분양하였지만 계약률은 매우 저조했다.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전세가율을 높아져갔다.

 

4막1장, 밀집모자는 겨울에 사둬라

87년 8월, 3저 호황으로 인해 실물경기가 살아나고 주식시장이 뜨겁게 달라올랐다. 시중에 돈이 넘치면서 물가가 상승할꺼라는 심리에 주택시장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초기 상승단계에서는 전세값 상승 - 소형아파트값 상승 - 미분양 아파트 감소로 이어진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뒤늦게 인기가 높아져 프리미엄이 붙게 됨.

주택경기가 회복될 때는 선취매가 이뤄지며 이사철이 한달정도 앞서 시작되므로 매년 8월과 12월의 거래동향은 주택경기 선행지표로 활용된다.

 

4막 2장, 주(住)테 IQ를 높이자

88년 1월, 대통령 선거로 대통령이 바뀌고, 선심성 개발계획에 따라 뭉칫돈이 이리저리 몰리며 개발예정지역 임야를 싹쓸이 했다.

행정지도를 통해 묶여있던 아파트 분양가격을 올리자 주택시장에 이상기류가 흘렀다. 시장에너지가 강해져 기존 아파트값을 자극했다.

'밀집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투자격언이 있는데 집도 마찬가지다.  집값을 밀어올리는 시장에너지가 강해졌다고 판단되면 남보다 먼저 흐름을 탈 필요가 있다. 조금 일찍 나와 기다리는 사람은 절대로 버스를 놓치지 않는다.

서울 전지역에 채권입찰제 실시. 미분양 거의 사라짐. 분양권 프리미엄 오름세. 입주물량이 부족해 전세가격도 상승.

 

4막 3장, 투기 바이러스

88년 7월, 경제가 좋아지고 임금상승되고, 물가가 오른다는 심리에 주택시장이 투기판으로 바뀜. 가수요가 들어옴.

주택건설촉진법 개정. 재건축대상 아파트에 '재건축 프리미엄'이 자연스럽게 얹혀졌다.

강남이 생활중심지로 떠오르면서  '강남 생활권'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

 

이빨 빠진 호랑이

88년 8월, 양도세 면세요건을 대폭 강화한 부동산 투기억제대책(8·10 조치)

- 1가구 1주택 비과세요건을 1년 이상 거주 또는 3년 이상 보유에서, 3년 이상 거주 또는 5년 이상 보유로 연장

- 1가구 2주택 양도세 면세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단축

날벼락을 맞은 부동산시장은 일순간 마비에 빠졌다. 막히면 돌아가라고 한 무더기 뭉칫돈이 아파트 단지 내 상가와 오피스텔 분양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휘저어 놓았다.

 

4막 4장, 판도라 상자

88년 12월, 분양가격 통제 때문에 채산성을 맞출수 없어 아파트건설을 꺼렸다.

건설부장관의 '분양가를 자율화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발언이 주택시장을 흔들었다.

지역구분없이 무차별적으로 아파트가격이 수직상승하였다. 이와 같이 아파트값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89년 1월, 주택시장에 불이 붙으니 양도세를 과세한 8·10 조치도 더 이상 약발이 안들었다. 1가구 1주택 양도세 비과세 기간을 대폭 늘리는 바람에 매물부족 현상이 나타나며 아파트값만 오르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갈팡질팡 주택정책

분양가자율화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아파트값이 올랐고, 한달 후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보류한다고 하자 아파트 공급전망이 불투명해져 또다시 뛰었다. 긁어 부스럼 만든 격이다. 결국 주택 정책이 갈팡질팡하면서 이래저래 아파트값 폭등을 부채질한 꼴이 되어 결국 '파동국면'으로 확대되었다.

강남 → 강북, 수도권 → 지방 역세권

 

억(億)파트

89년 4월, 89년 첫 분양 한강변 옥수동 현대재개발, 37평형의 경우 채권매입액을 분양가격의 2배에 가까운 1억 원을 써 넣었다.

채권입찰제는 분양가와 시세와의 차액을 환수해 국민주택기금을 조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파트값을 올리는 데도 한 몫한 셈이었다. 분양가는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 품질도 향상되지 않았다.

시장에너지가 워낙 강해 각종 투기억제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주택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며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30평대 아파트는 지역에 상관없이 1억 원을 넘어서며 '억(億)파트'가 됐는데 집 없는 서민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신도시 신드롬

주택난을 해결하고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분당, 일산 등 아껴두었던 땅에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

<수도권 신도시 건설계획>

  분 당 일 산 평 촌 산 본 중 동
면적(만 평) 556 475 149 128 164
주택건설(가구 수) 97500 69000 42500 42500 42500
수용인구(만 명) 39 27 17 17 17
공원·녹지비율(%) 21 23 14 14 12

신도시 아파트가 대량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로 수요자들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오른 강남지역 아파트값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주택가수요 억제대책

- 아파트를 한 번 분양받은 사람은 재당첨금지 기간이 지나도 영원한 2순위가 된다.

- 민간아파트 분양권도 전매가 금지됐다. 당첨자와 계약자, 그리고 최초 입주자가 동일인이 아니면 분양계약을 취소.

민간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81년부터 시행한 분양가격 상한선제도를 폐지하고 원가연동제를 도입.

 

묻지마 청약

89년 11월, 마침내 신도시 아파트 분양, 첫번째는 분당신도시 시범단지.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강남보다 저렴한 가격에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는 수요가 많았음. 가수요도 폭발함.

 

4막 5장, 전세대란

90년 1월, 신도시에 입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세값이 급격히 상승함.

세입자 보호를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2년 계약제'로 개정. 임대 보호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한꺼번에 왕창 올려버림. 최악의 '전세대란'.

크게 오른 전세값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집값을 밀어올렸다.

 

재테크 1순위

90년 5월, 주택청야관련예금 1순위 자격 강화, 청약예금은 9개월에서 2년으로 조정했고, 청약저축은 12회에서 24회 이상 불입해야 1순위가 될 수 있었다.

 

4막 6장, 황제아파트

90년 9월, 평당 1천만 원이 넘는 아파트가 점차 늘어났다. 몇 달 전만해도 압구정동과 서초동의 몇몇 대형아파트만이 '황제아파트' 자리에 올랐으나 이제는 대치동, 개포동, 잠실 등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아파트들도 평당 1천만 원에 거래되었다. 

아파트 공급을 확대해 가수요를 억제하고 청약경쟁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5개 신도시아파트 26,326가구를 동시에 분양하였다. 시장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에 싼값에 계속 분양되었지만 아파트값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구실이 있을 때마다 올랐다.

3개월 동안 한바탕 법썩을 떨고 난 후, 이사철이 끝나 가자 지역에 따라 상승과 하락이 교차하면서 서서히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90년 12월, 전세대란으로 시작된 90년은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아파트값이 수직 상승했다.

 

4막 7장, 복덕방시세

91년 2월, 중동에서 걸프전 발발, 오일 쇼크에 대한 위기감, 물가 불안 심리, 분양가 인상설.

4년째 봄 이사철 집값 상승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자주 바뀐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아파트값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파트값이 안정될 만하면

- 분양가자율화를 거론하였고

- 표준건축비를 연례행사처럼 상향 조정했으며

- 주택청약제도를 변경하는 등

수요자들로 하여금 내 집 마련을 서두르게 등 떠민 탓에 집값에 거품이 낀 것이다.

가격이 오르고 오르다가, 수요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르자 매수세력이 뒷받침 되지 않아 제풀에 꺾여 버렸다. 시장에너지가 약해진 것이다.

 

아파트값 '동작 그만'

91년 5월, 좀처럼 내릴 것 같지 않던 아파트값 하락 조짐이 주택은행의 도시주택가격동향 조사에 포착되었다. 매스컴에서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발표하자 막연한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투자심리를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신도시 입주 쇼크

91년 10월, 가을 이사철에도 아파트값이 계속 떨어지자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 침체의 서곡으로 받아들여 졌다. 신도시 건설효과가 뒤늦게 나타났다.

급매물이 시세를 주도하는 전형적인 침체기의 모습을 보였다.

서울지역은 강북보다 강남지역, 희소가치가 있는 중·대형보다는 소형아파트가 더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동(銅)파트 - 금(金)파트 - 은(銀)파트

4차 파동은 자생적으로 발생한 파동이었다. 3저(低) 호황으로 엄청난 국제수지 흑자를 누리면서 시장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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